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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좋고 웃기고 이상했다고 말하는 일기

  • dpeb018
  • 2024년 12월 5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월 21일



2024년 1월과 2월의 일들(노션에서 뭉치 발견)

     

     

일요일


夕陽はどこに沈んだの?

あの子のハートの向こう側

석양은 어디로 가라앉지?

그 아이의 마음 저편으로


수요일


H가 S라는 사람을 소개해 줬다. 전자 음악(아마도?)을 하는 친구였다. 여자애일 줄 알았는데 남자애였다. 안경을 쓰고, 머리가 짧고, 재미있고 세련된 옷을 입고 있었다. H는 S를 처음 봤을 때 모두가 그와 친해지고 싶어했다고, 궁금해했다고 말했고, 어떤 공연이 끝나고 S 주변으로 사람들이 둘러쌌다고 했는데 왠지 잘 상상이 갔다. 그런 게 가능한 사람도 있다는 것이 세상에는......(생략)

S는 주변 사람들의 호의가 익숙해 보였다...... 반대의 상황이 익숙한 친구들을 떠올리며 S와 그들이 너무도 달라서 몰래 웃었다. 아마 H는 S가 나를 마음에 들어할 것 같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나는 같이 있으면서도 이 애랑 어울릴 다른 애들을 연결 지었다. 나는 어색할 때 내 이야기를 꺼낼 틈이 없도록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고, 내 이야기가 내게도 상대에게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날도 그렇게 했던 것 같고, 어색한 나머지 H를 깎아내리는 장난을 했다는 사실이 조금 미안했다.

     

   

수요일

     

다음날 E와 함께 외국인 선교자 묘지 산책을 한 것이 좋았다. 이름 붙이기 전에 죽은 아이의 묘 같은 것이 있었다. 〈KING BABY GIRL〉 이라는 묘비명을 둘 다 좋아했다. 이곳이 서촌보다 더 낫다고, 참 이사 잘 왔다고 말해 주는 E가 좋았다. E는 자주 감탄을 한다. 무얼 먹어도 여태껏 먹었던 것 중에 최고라는 식으로, 이제 이것만 먹고 싶다는 식으로, 자기가 알던 것과는 다르다는 식으로. 그게 E가 느끼는 짧고 진실한 몰입과 경탄이라고 느껴지고 나 또한 그것이 짧고 진실하게 믿어진다. 그가 쓰는 일기는 장면이 세밀하게 출력되어 있고 아름답다.

     

금요일


그날 오후에는 김현진 님의 그림을 샀고, (멀고 슬픈 개둥이가 그려진 것, 가까워 선명해야 할 것은 흐려지고 있고, 멀고 흐려야 할 것은 선명하게 그려져 있고, 둘 다 합쳐져서 흐리고 멀고 선명한 느낌의 그림) B를 잠깐 만나서 전시를 보았다. B의 담배를 빌렸는데, 캡슐이 있는 걸 말을 안 해줘서 개맛없어서 토할 것 같았던 것도 생각난다. 그 사실로 B가 또 웃었다. 잠깐 함께 한남동을 걷던 게 좋았다. B는 대화의 주제건 어떤 말에서 나올 수 있는 반응이든 간에 좀처럼 그게 아닌 다른 길로 접어들어 말하는데 (걔는  〈아니어 볼 수 있지 않냐〉고 자주 되묻는다.) 그것이 주는 각별한 상쾌함 같은 것을 떠올렸다. 9년 전부터 매해 반복해서 듣는 〈aeolian harp〉를 다시 들었다.

     

토요일


J 번역가 선생님 댁에 놀러 갔다. 그 집에서 새벽 내내 구토하는 친구의 얼굴과 머리카락을 닦아 주었다. 다음날 아침에 우는 친구를 내버려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쯤 되어서는 거의 친구를 방에 처박고 돌아온 것이었다. 기억을 떠올리면 그 대상과는 관계 없는 어떤 지겨움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 전날 선생님은 나에게 왜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는 것 같냐고 물었다. 나는 그런 적이 별로 없었어서 진심으로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내게 말하는 목소리랑 쓰는 글이 참 닮아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저버린 것들이 너무 많이 떠오르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대체로 납득하기 어렵고 결코 좋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일요일


일리아스 다시 쓰기 시 수업. 은수와 내가 각각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를 맡아 낭독했다. 상헌이는 자기가 호메로스래. 그걸 하겠대. 그는 아주 잘 읽었어. 은수랑 나는 초등학생처럼 조금 키득거리다가, 진지하게 읽기도 했어. 은수는 목소리가 좋으니까. 상헌이가 진행을 참 잘 해. 걔의 연극적인 몸짓이 걔 말대로 좀 짜증나고도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는 것 같아. 그런데 그때 참 많이 졸렸지…….. 전날에 친구가 밀려 오는 구토로 기도가 막혀서 죽지 않게 계속 뒤집어 주느라 밤을 샜기 때문이야. (정말로 <브레이킹배드>에서 그 여자애가 그런 식으로 죽는 것에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었다.........)

     

     

화요일


가구 조립의 밤. 동료가 공구를 빌려 줬어. 가구 조립의 밤에는 M이 집에서 마전을 구워서 텀블러에 담아 와서 데워 줬어. 조립한 테이블 위에서 나누어 먹었어. 집은 식탁 밖에 없어서 썰렁했지만, 이들과 모여서 이렇게 하려고 한 식탁에서 이러고 있으니까 좋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끝날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무엇도 결정된 것은 없다. 아무것도 없다. 슬픔도 기쁨도 아닌 어떤 것? 처음 먹어 본 마전은 약간 녹진하고 촉촉하고 담백했다. 마전을 데우기 위해 가져온 작고 노란 후라이팬을 M이 선물로 두고 갔다. 집에 처음으로 생긴 조리 도구였다. 〈성실하게 모순적일 필요〉를 떠올렸다.

     

    

목요일


J님 전시 뒤풀이 갔다. 난 전시를 보지 못했고, 나머지 둘은 바쁘게 본 것 같다. J님과 그 일행이랑은 테이블이 분리된 채로 W과 B와 내가 양꼬치를 먹고, 이런 배제나 분리는 새로운데? 아늑한데? 하는 농담을 나눴다. B의 집에서 화분과 책들을 구경했다. 로절린드 크라우스 책에 그가 메모를 한 것을 보았다. 서부극 배경 짱구 극장판에 나오는 부리부리가 석양을 등진 모습의 스티커 같은 것이 책갈피로 끼워져 있어서 또 웃었다. 표지를 벗겨서 손때가 탄 책들이 좋아 보였다. 그게 뭐가 좋아 보이냐고 B가 타박줬다. 필립 라킨 시 전집 사고 싶다.

     

금요일



수엉이 건물 아래에서 담배 피는 쪽으로 차를 몰고 오더니 갑자기 뒷차를 쾅 하고 박아서 모두가 놀랐는데, 그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태연하게 〈도시의 익명성〉을 말하고(대충 튈 거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빌렸다가 돌려주지 않은 라이터(본인이 말함)로 연기를 무럭무럭 피워 올리는 모습이 특별히 웃겼다. 그러고는 수엉은 우리들을 남겨두고 정말로 시원하게 떠나 버렸다. 아마 이것저것으로부터도. 일전에 이구치 나미의 영화에서 유리가 자전거를 타고 나아가며 〈엔젤〉 이라는 곡을 부르는데, 그 장면을 보며 빠져 나갔다는 기분과 남겨졌다는 기분이 동시에 들었던 것이 겹쳐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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