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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
내가 아픈 사람인 것은 아니다 나는 동네 약사에게 기침약을 달라고 하였다
그는 500정이 든 커다란 약통을 내밀었고 나는 절반으로 나눌 수 없냐고 물었다 그는 조금 곤란해하다가 곧 봉투에 절반을 나누어 주었다 그는 약을 포장하면서 내가 들고 온 커피컵을 보고
그 가게 사람이 많나요?
하고 물었고 나는 원두의 종류도 사람도 많다고 대답한다 납득한 것 같았다 약사는
들어온 누군가를 보고 말을 더 이어나가지 않았다
나는 절반의 약을 들고 나와서 그가 하려던 말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생각을 하다가
내 지나간 모든 과외 선생들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그 사람들 모두에게 약속을 했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리고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헤어진 사람들의 모음이 나의 이전 과외 선생들인 것이다 지금도 도대체 과외 선생과는 어떻게 헤어져야 잘 헤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들 모두에게 약간의 미안함과 그것보다 좀 더 많은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다 내가
약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남아 있을 것 같다
나는 아픈 사람이 아니고 노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려는 마음을 잘 지켜왔다 오래전부터
늙어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는 눈물도 흘릴 수 있다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나는 건강하고
절반의 약을 가지고 있으며
규칙적으로 인사를 연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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