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세기
<짧고 단순하고 작은 구조를 가진 것들>에서 나는 "모든 것을 설명하고도 해결되지 않는 무엇"이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을 설명하지 않고도 드러나게 하는 무엇에 대해서도 써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짧은 시 중에 "그것도 설명해주었다." 라는 것이 있다. 여기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것도 이러한 차원에서 일종의 넓은 테두리 짓기였다.
그것도 설명해주었다
어느 날은 돌문이 쉽게 열렸다.
바깥에는 외투를 한번 더 바르게 걸어두었다.
나는 이유를 물었고
우나는
조금 아는 얼굴로
그것도 설명해주었다.
나는 여기서 설명하지 않고도, 그들에게 무언가 일어났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무슨 설명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설명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무언가가 지나갔다, 고 말했을 때 순간 구체화되는 것들, 어떤 것을 말하지 않고서도 벌어지고 감각하게 되는 것들을 느끼고 싶었다. 잘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
이런 테두리 짓기는 무얼 할까? 좋은 구조에는 훌륭한 구멍이 있고 이게 있다면 이 울타리 틈으로 깜짝 넘어가는 북실한 양도 보게될 수 있을 것이다. 이 테두리라는 것은 곧 울타리 틈도, 그걸 넘어가는 양도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해 보자. 제약이 구체화하고,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상상이라고 할 수 있다. 양 한 마리, 그리고 다시 또 한 마리 ...... 우리는 울타리 주변에 남은 보슬보슬한 양털 조각들도 덤으로 갖게될 지도 모른다. 실재나 세계의 흩어진 찌꺼기 같은 것들을.
더 나아가 우리는 마음 속으로 손을 뻗어 양을 만지는 상상을 해볼 수도 있다. 양은 충분히 빽빽하며, 동시에 충분히 듬성할 것이다. 바로 나는 이런 부드러운 결렬이 중첩되는 순간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는 거기서 다시 기쁨과 슬픔을, 그리고 기쁨과 슬픔도 아닌 어떤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이렇게 다 세다보면, 우리는 드디어 잠에 들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