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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내어주렴

내 선생님은 말했다

자리를 내어주렴

그 말을 듣고 나는 생각했다

이제 다른 아이를 좋아해야지

내 선생님은 말했다

자, 보렴

골목 사이로 다가오는

오토바이를

그러니까 지금은 한낮이고 

​테이블에 모이기로 한 시간이다

 

나는 선생님과 차를 마시고

신기하지요 이 테이블에는 서랍이 다 있어요

열어보면 빈 성냥갑이 있다

 

불을 붙여볼 수도 있을 거예요 하자 선생님은 검지 손가락을 들어

나는 거기에 불을 옮겨붙이는 시늉을 하고

​선생님은 후, 바람을 분다

바람이라니, 안 될 일이지

​날아가고 말 거예요

그러나 나는 나를 앞서 나간 오토바이가

되돌아 오기를

 

영원히

 

얇은 두께를

고르게 펴진 작은 개구리 시체를

경외나 정중을 모른 채로

함부로 말과 빵과 꽃을 놓지 않고

그 앞을 돌아서 지나가기를

 

 

자리를 내어주렴

 

선생님은 말했다

이렇게도 말했다

가엾구나 너는,

얇고 가벼워서 날아가기 좋겠지

눌러줄 것이 필요하겠구나

그런데

자, 보렴

다가오는 오토바이를

 

생각했다

이제 다른 아이를 좋아해야지

개구리 시체 앞에서 돌아가는 사려깊은 저 아이를

​마음을 붙여야지

성냥갑을 잘 닫아두었다

 

선생님은 꽃 한 송이를 훔쳐서 내 주머니에 꽂아줬다

그는 빵을 맛있게 먹었고, 나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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