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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개 선과 힘

 

좋은 장면들은 내게 무얼 할까? 두 가지가 떠오른다. 하나, 새로운 절개 선을 갖게 해주는 것, 둘, 무언가를 정말로 쥐여 주는 것. 

절개 선

상반기에 본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는 만리포 작가의 일기 만화 「돈덴」에 나오는 것이다.〈나〉는 철조망에 매달려 있는 검은 사체에 다가간다. 가까이 가보니 죽은 까마귀 모양을 본뜬 플라스틱 새 쫓개다. 이후 까마귀 한 마리가 높이 활강하다 번쩍이는 번개를 보게 된다. 이어지는 장면에는 내리치는 빛과 같은, 〈사랑 같은 것은 댈 게 못 될〉 정도의 충격이 범람하여 온통 새하얗게 날아간 얼굴이 나온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카메라를 쥔 〈나〉가 건너편에 모인 직장 동료들을, 번개 빛처럼 번쩍하고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로 촬영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러고는 말한다. 〈잠깐만 친해집시다.〉

돈덴 이미지 캡션*​

이 장면은 내게 새로운 절개 선을 새겨 넣는다. 마치 번개와 같은 모양으로……그런 실땀을 가지고 나를 갈라 볼 수 있다면, 어딘가에 갈라진 모양 그대로의 절개선을 맞붙여 이음매를 이어 볼 수도 있다고 상상하게 된다. 새 쫓개와 같은 빈 껍데기를 보고 죽음이라고 믿게 해, 멀리 돌아 높이 활공하게 만드는 것처럼, 그러니까 가짜를 있는 힘껏 믿는 힘처럼, 번개 모양으로 쪼개진 내 안에 내가 모르는 얼굴을 집어넣을 수도 있게 된다. 「돈덴」의 장면은 인물과 대상 사이를 통과하고, 경계를 유연하게 뛰어넘어 활공하게 하는 감각을 한꺼번에 전달한다. 그러면 마치 나는 그 인물이 된 것처럼, 이렇게 말해 볼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잠깐만 친해집시다.〉

이 가르는 선은 만화의 특징 중 하나다. 절개 선은 만화에 나뉜 칸과 칸, 그리고 한 페이지 전체에 걸쳐 있다. 우리는 만화에서 그림이라는 허구적인 기호로 그려진〈말도 안 되는 것들〉이 시간 선을 넘어 전개되는 전체 화면을 한눈에 보게 된다. 나는 어떤 의심도 없이 이것이 눈앞에서 있는 그대로 일어난 일이라고 믿게 된다. 이처럼 밀어붙이는 힘은 만화적이다. 이 힘은 마이조 오타로가 가진 이야기를 짓는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쥐여 주는 힘

마이조 오타로는 소설 『좋아 좋아 너무 좋아 정말 사랑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도도 소망도 희망도, 모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 주기를 바라는 것이며, 다시 말해서 미래에 대한 자신의 희망을 말로써 하는 것이며, 반성이나 후회와는 바라보는 방향부터 완전히 다른 것이지만, 하지만 나는 일부러 과거의 일에 대해서도 기도한다. 이미 완전히 지나가 버린 일에 대해서도, 어떻게 되어 주기를 바란다. 희망을 품는다. 기도는 말로 하는 것이다. 말은 모든 것을 만든다. 마치 신처럼 말은, 기적을 일으킨다. 말은 이야기가 된다. 과거에 대해서 기도할 때, 말은 이야기가 된다. (……) 그리고 때때로 소설이라는 형태로 기도한다. 이 기도야말로 기적을 일으키고, 과거에 대한 희망을 반짝거리게 한다.〉

― 『좋아 좋아 너무 좋아 정말 사랑해』 (10면)

마이조 오타로는 누군가의 죽음과 같은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것들을 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곳이 소설이 지어질 수 있는 자리라고 믿으며, 불가능한 것들을 〈어떻게 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저히 무엇이 될 수가 없는 자리에서, 마이조 오타로는 〈어떻게 되어 주기를 바란다〉의 마음으로 허구의 양식을 짓고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마치 「돈덴」에서 아무렇지 않게 시간 선을 뒤틀고 나와 대상의 위치를 바꾸고 저편으로 건너가며 이것과 저것을 맞붙이고 활공하는 새가 되는 것처럼.

만화의 형식이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있는 그대로 일어났다고 믿게 하는 것처럼, 마이조 오타로의 말들은 가 닿을 수 없거나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한 것들에 대해서조차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곳을 침범할 수 있다고, 개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거기서 우리는 이야기를 지어 올릴 수 있다고,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일어난 일 그 자체라고 하는 마음을, 그러한 힘을 보여 준다고 느낀다. 마이조 오타로는 말하는 듯한 그의 문체처럼 가볍고 산뜻하고 달리기를 하는 것 같은 믿음을 내게 정말로 쥐여 준다.

「돈덴」 의 절개 선은 내리쳐 잘린 자리에 완전히 다른 대상을 누비 뜨는 힘이다. 마이조 오타로가 쥐여 주는 힘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것을 오히려 되돌리는 힘으로 삼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것들을 일그러 뜨리고,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눈앞에 펼쳐 보이며 새로운 평면을 만들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건 있는 그대로 일어난 일이야〉.

나는 이런 장면들이 준 절개 선을 따라서 형식을 덧입고 번쩍하고 쪼개져 볼 수 있다. 되돌릴 수 없거나 가 닿을 수 없는 것을 향해 가뿐히 활공해 나아가며, 갈라진 자리에 너무도 많은 인물의 말과 얼굴을 새겨 넣은 채로 상대에게 말하고 싶어진다.〈잠깐만 친해집시다.〉나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을 침범하고 싶다. 도무지 어찌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들에 개입하고 싶다. 미래의 일이지만 그런 일은 이미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바로 그곳에서 이야기를 지어 올리는 장면을 원한다.

나는 이러한 장면들에 힘을〈입는다〉. 힘을 입는다고 말하면 정말이지 그 자체로 힘을 입는다. 이 문장은 나에게 있는 그대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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